폭풍전야 (2010) : 나중에 그 바닷가를 재방문해봐야 하나? Movies

폭풍전야 (2010) ☆☆1/2


 개인적 관점에서, [폭풍전야]는 예고편이 영화감상을 망쳐버린 특이한 사례였습니다. 문제의 예고편은 마치 뮤직 비디오 스타일의 신파 멜로 기성품인 양 영화를 포장했습니다. 그 때문에 생겨난 완전히 잘못된 예상이 자리 잡은 제 관점이 영화자체와 정면충돌하는 일이 오늘 둔산 CGV에서 조조상영으로 볼 때 생겼습니다. 영화가 끝나고 나서 전 옆에 있는 관객에게 영화가 왜 이리 어이없을 수 있냐고 툴툴거리면서 상영관을 나갔습니다. 하지만 평정을 되찾고 나중에 여러 모로 점검해 보니, 영화는 제가 불평한 것 그대로를 추구하고 있을지도 모름을 발견했습니다.

배경은 멜로드라마에 적절한 장소이긴 합니다. 바닷바람이 끝없이 날리곤 하는 제주도의 어느 해안에 한 잘 꾸며진 레스토랑이 홀로 자리 잡고 있고 여주인공 미아(황우슬혜)가 혼자서 그곳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사람들 끌만한 장소이긴 하지만 이곳은 김기덕의 [섬]에서의 동떨어진 호숫가 낚시터만큼이나 낯선 외로움이 감돌고 있습니다. 원하면 근처 시내로 잠시 갔다 올 수도 있어도 사실상 이웃이라고는 모텔을 운영하는 민정(김정민)과 그녀의 눈 먼 할머니 밖에 없습니다(예, 장님이 우리보다 더 많은 걸 봅니다).

그리고 이야기 안에서 이모저모를 들여다보면 진부한 멜로드라마의 요리 재료들로 사용해도 좋을 게 많습니다. 제 계산이 정확하다면 불치병이 걸린 사람은 하나도 아니고 둘도 아니고 자그마치 다섯이나 되어 버릴 가능성이 있는 가운데 얽힌 삼각관계들과 상처받은 주인공들까지 겹치고 있고 그것도 모자라 경찰 관련 문제까지 끼어들고 있으니 신파 정식 코스 하나는 아주 금방 나올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에 마술까지 끼어들기까지 하니 디저트는 문제없겠지요.

미아의 세상에 마술사인 상병(정윤민)에 의해 탈옥수 수인(김남길)이 들어옵니다. 수인은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히게 된 요리사인데, 감옥 안에서 그는 미아와 관련된 어떤 사건으로 스스로 감옥에 들어간 상병과 가까워지게 되었습니다. 상병을 통해서 감옥을 또 탈옥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은 수인에게 상병은 미아에게 안부 좀 전해달라고 부탁하지만, 수인은 무엇보다도 자신이 별러 왔던 일을 하려고 합니다. 그러다가 그는 허무한 결과를 맞이하고 그는 부탁대로 제주도로 내려가서 미아를 만나 그녀 레스토랑의 주방장으로 고용되지요.

원경으로 바라다보는 해안가 풍경들이 이어지는 동안 영화는 참 나른하고 무심하게 전개되어 갑니다. 말하는 걸 들어 보면 주인공들은 현실 속의 사람들 같이 보이지 않고 신파극 주인공들 같이 굴지도 않습니다. 그 느릿한 분위기와 그 무덤덤한 대사 전달 방식을 들어보면 영화는 아트하우스 영화 스타일에 더 가깝습니다. 그런 영화들 세상에서는, 적막한 동네에서 모텔과 레스토랑이 지금까지 어떻게 수지맞게 그리고 깔끔하게 운영해 왔는지에 대해서는 질문하는 게 무의미 할 것입니다. 그리고 누구 때문에 차가 뒤집혀서 사람 다치는 일 생겨서 걱정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무의미할 것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영화를 다시 재점검해 보면, 보는 동안에 많이 어처구니없어 했던 한 소재는 전보다 괜찮게 느껴집니다. 상병을 통해 미아와 수인은 마술을 배웠고 이야기가 진행되는 동안 이런 설정을 갖고 영화는 상당히 말도 안 되는 일들을 벌이고는 합니다. 이런 일들이 보통 신파극 이야기에서 등장하면 헛웃음만 나오겠지만, 세상과 동떨어진 배경 속에서는 별로 사실적으로 보이지 않는 이런 마술들이 이야기를 위한 도구로써 어울립니다. 현실 도피적 분위기의 장소에 있는 것도 모자라서, 세상으로부터 움츠러든 이 외로운 두 주인공들이 거기조차에서도 벗어나고 싶어 하니 말입니다.

김남길과 황우슬혜는 영화 속 배경을 그냥 돌아다니기만 해도 시선을 끌 수 있는 배우들이고, 영화에 툴툴거리면서도 황우슬혜가 그 조용한 공간을 돌아다니는 모습이 전 마음에 들었습니다. 작년에 정신 나간 허접한 아트하우스 영화 [펜트하우스 코끼리]에서 유일한 장점이었던 그녀는 이번에 제대로 잘 꾸며진 아트하우스 영화에 나오게 되었습니다. 이 둘이 영화 상영 시간 대부분 동안 거리를 두는 모습에 실망할 분도 계시겠지만, 여러분, 로맨스는 기대되는 걸 기다리는 것에 묘미가 있는 법입니다.

영화에 대한 크나큰 오해를 했다는 걸 나중에서 깨달았기 때문에 본 영화의 경우 저는 신뢰있는 조언자가 될 수 없습니다. 단지 전 여러분들에게 예고편이나 홍보전단지를 보고 엉뚱한 생각을 가지시지 말라는 조언만 해드릴 수 있습니다. 재점검 결과, 저는 [폭풍전야]는 폭풍우가 해안가를 덮치게 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하고자 하는 일들을 괜찮게 해냈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하지만 전 여전히 이야기와 캐릭터들에 대한 냉담한 구석을 지우지 않을 수 없고 보는 동안 내내 해안가 멜로물인 [나이트 인 로댄스]만 떠올렸습니다. 나중에 이 근사한 바닷가를 재방문할 기회가 있으면, 제 의견과 느낌에 대해 사과드릴 지에 대해 재차 고려해 보겠습니다. 어쩌면 그 때 영화는 [섬]만큼이나 좋게 보일 지도 모릅니다.


덧글

  • 수미상관 2010/04/03 10:49 # 삭제 답글

    격정멜로란 문구땜에 약간의 혼동이 있었음을 제 자신도 부인할수 없네요.
    주연배우 김남길이 그런 의미의 격정이 아니라했음에도 영화를 보고 난후에야 비로소 그 느낌을 체험할수 있었습니다.
    영화는...다소 느린 템포에 두사람의 동선을 마치 연극처럼 가끔의 암전과 함께 보여주고 있더군요..
    그런데 참 이상한건 두연인의 눈물의 베드씬을 보고 난후 집으로 돌아온 후 지금까지 전 두 주연배우의 베드씬 장면과 마술속으로 사라졌던 그 허공이 자꾸만 떠오르는겁니다...여운...결국 이 영화는 여운을 남겨줄수 있는 힘이 있더군요. 어쩌면 그간 겪어보지 못한 멜로의 형태를 이제서야 어렴풋이 자각하는 중인가봅니다.
댓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