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데미 시상식 결과에 대한 여러 잡담들... 잡담

1.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 직전의 경쟁은 전번보다 더 흥미로운 경우였습니다. [슬럼독 밀리어네어]는 작았지만 처음부터 상을 탈 것이란 건 자명한 가운데 몇 개나 탈지만이 문제였지만, [허트 로커]는 더 아슬아슬한 상황에 있었습니다. 상당히 적은 수익을 낸 이 저예산 고효율 영화에 비하면, 엄청난 수익을 냈을 뿐만 아니라 그에 상응하는 많은 인기를 누린 [아바타]는 가볍게 볼 적수가 아니었고 이들 간의 접전은 팽팽했습니다. 처음엔 비평가들의 지지를 받은 [허트 로커]가 앞서다가, 골든 글로브에서 [아바타]가 승리를 거두었다가, 또 다시 [허트 로커]가 각종 시상식들에서 선두를 달리더니 결국엔 [허트 로커]가 작품상을 비롯한 6개 부문 상들을 가져가게 되었습니다.  
2. [허트 로커]로 작품상을 받게 된 제작자는 네 명이지만 그 중 한 명인 Nicolas Chartier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자기 작품 뽑아달라고 이메일을 함부로 돌리다가 벌칙으로 참석 못하게 되었고 그의 참석 티켓을 갖기 위해 상당한 경쟁이 있었다고 하지요. 이 스캔들 때문에 [허트 로커]의 수상이 불투명해지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도 있었지만 보다시피 별 일이 없었습니다. 오스카 레이스에서는 이런 일들이 터지기 마련이고 대개 잡음 정도로 머무르거든요. 작년의 [슬럼독 밀리어네어]도 참 공격 많이 받았고 [뷰티풀 마인드]에 대한 음해도 만만치 않았지만 결국엔 아카데미 회원들은 마음을 바꾸지 않았지요.

3. 전에도 말했지만 올해는 아카데미의 성향에 대한 흥미로운 실험이었습니다. 옛날부터 간간히 그랬던 것처럼 대박 냈을 뿐더러 기술적인 성취가 상당한 규모 큰 영화를 택할지 아니면 요즘처럼 작지만 날선 수작을 택할지가 문제였는데, 결국 아카데미는 후자를 택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단순히 작품성뿐만 아니라 기술적 측면들도 많이 인정해 주기도 했지요.

4. 하지만 샌드라 불럭의 여우주연상 수상에서 보다시피 아카데미는 여전히 스타가 뭔가 색다른 걸 했다는 것 자체만으로 축하해주는 버릇은 버리지 못한 것 같습니다. 그래도 샌드라 불럭이 래즈베리 상 받고 그 다음 날 오스카 상 받는 최초의 여배우가 되는 것도 재미있었습니다. 영화는 좀 별로여서 불만이었지만, 전 그녀가 무대 위로 오르는 걸 보면서 그녀의 성실한 경력을 더 생각했습니다. 스타가 된 이후로 꾸준히 일해 오면서 어느 새 우리나 그녀 본인도 상상하지도 못했던 결과를 낸 모습이야 보기 흐뭇하지요. 참고로 기회 있으시면 [프로포즈], [올 어바웃 스티브], 그리고 [블라인드 사이드] 연달아 보시길 바랍니다. 배우로써 불럭의 실력을 파악하는 데 그만한 게 없습니다. 그러면서 불럭이 래즈베리 상 받을 만한 지에 대해 꼭 확인해 보세요.


5.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은 전번 아카데미 시상식에 비해 많이 떨어졌습니다. 지난 번 시상식이 많이 좋았던 것도 요인이지만 전체적으로 딱히 재미있지는 않았습니다. 비록 끔찍한 것은 아니었지만 밋밋하고 문제들이 많았지요. 닐 패트릭 해리스의 오프닝 넘버는 볼만 했지만, 그에 이은 공동사회자 스티브 마틴과 알렉 볼드윈의 만담 프롤로그는 웃음이 여러 번 터졌어도 그냥 사회자를 한 명으로 했었다면 좋았을 거란 생각이 들 정도로 흐름이 뚝뚝 끊기곤 했고 농담들에서 그다지 많이 노력하지 않았습니다. 이버트의 지적대로 티나 페이를 갖고 요즘 들어 더 짜증나게 굴어대는 사라 페일린 흉내를 맡기거나, 아니면 이미 [30 Rock]이 한 적이 있는 [파라노말 액티비티] 패러디 시도를 이왕에 더 막 밀고 갔다면 더 좋았겠지요(제 제안: 스트립을 등장시켜서 프롤로그에 농담한 그대로 쓰리섬 상황으로 만드는 겁니다. 아니면 존 휴즈의 [자동차 대소동]처럼 배개 농담을 인용하는 것도 괜찮지요)

6. 그 외 나쁜 점들은 곳곳에서 눈에 띠었습니다. 몇몇 중요 부문들을 제외하고 수상자들의 소감을 45초로 제한한 것은 너무했지요. 그래도 여전히 시간은 촉박해진 것 변함없는데 말입니다. 그런가 하면, 로렌 바콜, 로저 코먼, 고든 윌리스 등의 명성 높은 공로상 수상자들을 무대 위로 올려 보내지 않고 그냥 자리에서 일어나게 하다가 또 그냥 앉게 하는 것도 아쉬웠습니다.
호러 영화들 몽타주는 별 무섭지도 않은 [뉴 문]의 음악과 주연 배우들을 등장시킬 때부터 분위기가 망쳤고([영 프랑켄슈타인]이 호러였나?), 주제가상 후보들 공연을 치워두고 대신 음악상 후보들 공연을 내민 건 최악의 실책이었습니다. 97년 아카데미 코미디 음악상 후보들은 주제도 있고 스타일도 있는 가운데 안무로 잘 표현된 걸 잘 기억하는 본인에겐 영 거슬리는 풍경이었지요. 그리고 세상을 떠난 고인들에 대한 추모의 경우 감동적이었지만 파라 포셋을 빠트리는 눈에 띠는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7. 그럼에도 불구 좋은 순간들은 여전히 남아있었습니다. 벤 스틸러가 나비족으로 분장해서 분장상을 시상하러 나온 건 과한 감이 있지만 낄낄거리지 않을 수 없었고, 작년에 사망한 존 휴즈를 추모하는 순간을 따로 가지면서 휴즈의 영화들 덕분에 입지가 상승했던 배우들이 나이를 먹은 가운데 다시 함께 모이는 풍경은 흥미로웠습니다. 주연상 부문들에만 한정되니 불만이었지만 후보들 각각을 예찬하는 것도 좋은 배우들 덕분에 오글오글함은 어느 정도 막아진 가운데 비교적 원만하게 진행되었습니다(이건 새디스틱하지 않나 싶지만 제레미 레너에겐 콜린 파렐보다 그가 [노스 컨트리]에서 무지 괴롭혀댄 샬리즈 테론이 더 재미있었을 것입니다). 그 놈의 45초가 원수지만 크리스토프 발츠나 모니크와 같은 배우들은 그 제한 속에서 짧은 수상 소감을 잘 해냈고, 마침내 오스카를 타게 된 제프 브리지스야 박수갈채를 한껏 받을 만하고, 불럭도 나무랄 데 없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감독상을 받은 캐스린 비글로는 앞으로 자주 회고될 순간의 주인공이 되었지요. 무슨 사정인지는 몰라도 마지막에 시상자로 등장한 톰 행크스는 들어오자마자 후보들 거명도 없이 작품상 수상작을 시원하게 호명했지요.

8. 이번에 전 22개 부문 예상을 해서 총 15개를 맞추었지만 대부분 확정시 된 것이었습니다. 나머지 7개의 경우 수상확률 2순위가 탔거나 아니면 점찍어 둔 다크호스가 탔으니 역전이지만 아주 놀랄 만한 일은 아니었지요. 쿠엔틴 타란티노가 각본상을 타지 못한 게 아쉽지만 마크 보올도 탈 만했습니다. 반면에 [인 디 에어]가 빈손으로 돌아간 가운데 제이슨 라이트먼은 좀 아쉽지만 [프레셔스]도 좋은 영화이고 덕분에 첫 흑인 각색상 수상자가 나왔으니 별 불만은 없습니다. 비록 예상은 틀렸지만, 처음부터 다크호스로 눈여겨 본 [시크릿 인 데어 아이]가 타니 제 예감이 맞아 떨어졌다는 것에 전 즐거워했습니다.


9. 무엇보다도, 지난해에 비해 오스카 시상식을 더 깨끗하게 볼 수 있다는 점을 빠뜨릴 수가 없습니다. 가끔 끊기기도 했지만 금방 회복되었고 비록 약 30초 느리지만 그 어느 때보다 편하게 볼 수 있었습니다. 지난번엔 OCN 중계가 그리웠지만 이젠 아닙니다. 또 이 단계에서 얼마나 향상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앞으로도 이 정도 질만 유지하면 OCN이 중계를 재개한다고 해도 전 별 상관하지 않을 것입니다.

10. 그나저나 이번엔 제 아카데미 시상식 시청 경험은 유달리 “It's Complicated"였습니다. 듀나의 영화 낙서장 게시판에서 코멘트 던지랴, 이버트 영감님 트위터 페이지 체크하랴, 제 블로그에서 수상자 목록 업데이트 하랴, 수상작에 해당하는 사진들 찾으랴, 좋은 인터넷 방송 소스 찾으랴, 수상자 호명과 수상 소감 집중하랴, 아침과 점심 때우랴.... 그러니 이제 막 구한 동영상으로 쇼를 다시 편히 재감상해서 지금까지 말한 제 의견을 재점검해보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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