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플 테라피: 대화가 필요해 (Couples Retreat, 2009) : 테라피 아일랜드 Movies

커플 테라피: 대화가 필요해 (Couples Retreat, 2009) ☆☆
 

 미국 시트콤에서 이름을 처음 들었을 때는 가상의 섬이라고 생각했었지만 [커플 테라피: 대화가 필요해]에 등장하는 보라보라 섬은 정말 있습니다. 남태평양에 자리 잡은 프랑스령 폴리네시아 군도의 보라보라 섬은 구글을 검색하는 나오는 사진들만 봐도 금세 반하게 되는 아름다운 곳이고 영화에서 보여 진대로 호텔 방갈로 안에서 그 깨끗한 바닷물을 들여 볼 수도 있습니다. 본 영화를 만든 사람들은 정말 그 섬으로 가서 촬영했고 덕분에 영화 속 풍경은 참 좋기도 하지만 불행히도 우리는 2시간 동안이나 형편없는 시트콤 수준의 코미디를 동시에 견뎌야 합니다. 웃음은 너무나 적고 지루함은 민망함과 작위성에 의해 깨지곤 합니다. 이건 전혀 휴가가 아닙니다.


영화 속 네 쌍의 주인공들이 보라보라로 가게 된 이유는 제이슨(제이슨 베이츠먼)과 신시아(크리스틴 벨) 때문입니다. 항상 완벽함을 추구하는 제이슨과 거기에 따라가느라 힘든 신시아의 관계는 자식을 못 가지게 된 이유로 삐걱거려왔고 그리하여 그들은 다른 친한 커플들 앞에서 자신들이 할지도 모를 이혼을 프리젠테이션으로 설명합니다. 막대그래프 등을 동원한 제이슨의 분석에 따르면 헤어지는 게 양방에게 손해이니 가능한 부부관계를 회복하는 게 최선이고, 따라서 그들은 보라보라 섬의 에덴 리조트로 커플 테라피 받으러 가기로 결정했습니다. 한데 자신들이 선택한 패키지가 단체로 가면 50% 할인이니, 제이슨과 신시아는 그들에게 같이 가자고 제안하지요.  

데이브(빈스 본)과 로니(말리 애커맨), 조이(존 파브로)와 루시(크리스틴 데이비스), 그리고 셰인(페이즌 러브)와 트루디(칼리 호크)는 딱히 가고 싶어 하지 않지만 결국엔 가게 됩니다. 그들이야 이혼할 생각은 없지만 각본의 요구대로 각자만의 문제들을 갖고 있습니다. 데이브와 로니는 토끼 같은 자식들을 키우느라 자신들 사이의 열정이 사그라지고 있는 중이고, 조이와 루시의 관계는 옛날에 원하지 않게 맺어진 이후로 둘이 딴 데 눈을 돌리고 있어왔고, 셰인은 최근에 아내와 이혼한 후에 이젠 자기 딸 나이쯤 되는 트루디와 사귀고 있습니다(트루디는 셰인을 애칭으로 ‘Daddy'라고 부릅니다).

보라보라 섬의 항공 촬영 사진을 보니 좀 작기는 해도 리조트는 적어도 하나 이상은 있을 같지만 영화에선 마치 그 섬에는 리조트 하나만 있는 양 묘사됩니다. 코미디 영화 설정이 말도 안 된다고 이의를 제기하는 건 무의미하다는 건 저도 잘 압니다. 하지만, 세상에, 문제의 리조트인 에덴은 보라보라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영화 보는 동안 절반 이상 깎아 버리는 데 성공했습니다. 동쪽 해안 구역은 주인공들과 같은 문제 커플들에게 배정된 장소인 가운데 반대쪽인 서쪽 구역은 미혼자들의 구역이라고 하면서 주인공들의 통제를 제한하는데, 그 금단의 서쪽 동네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여러분들께서 흔히 기대하시는 열대 섬의 매혹과 매력과는 전혀 관련이 없습니다.

제이슨과 신시아를 제외한 다른 커플들은 커플 테라피에 상관없이 그냥 널널하게 6박 7일을 보내려고 하지만 정신이 좀 문제가 있는 듯 한 매니저 스탠리(피터 세라피노윅.'C'가 들어간 스탠리랍니다)나 주인인 마르셀(장 르노) 앞에서는 이건 어림없는 일입니다. 규정상 여기에 있는 대신 커플 테라피를 무조건 받아야 하고 그러니 할 수 없이 그들은 모두 거기에 참여할 수밖에 없습니다. 논산 훈련소도 아닌데 새벽 6시에 기상해야 하는 건 기본이고 날마다 커플 상담가와 얘기를 나누는 등 별별 희한한 일들에 참여해야 해야 합니다. 별 무섭지도 않은 상어들이 맴도는 바다에서 시간을 보내는가 하면 카마수트라가 섞인 듯한 요가를 옷을 거의 입지 않는 강사 파블로(카를로스 폰스)에게서 보내야 하지요. 그런 동안 도입부에서 그나마 남아 있던 코미디 가능성은 따사로운 햇볕 아래에서 죄다 증발합니다.

국내 개봉제목의 부제와 달리 영화 내내 주인공들 간의 대화는 존재하지 않는 거나 다름없을 뿐더러 코미디조차도 없습니다. 테라피가 필요 없다고 생각했는데 결국 자기들에게 문제가 있었다는 거야 뻔해도 좋은 설정이긴 한데, 각각마다 문제가 있다는 사실만 던져놓지 이야기는 도무지 그 어떤 방향으로도 굴러가지 않고 정체감만 쌓여집니다. 그것도 모자라서 민망할 정도로 질 나쁠 뿐만 아니라 대부분 먹히지 않는 코미디들이 계속 이어지기만 하고 이런 진창 속에서 닭살 돋는 우스꽝스러움을 태연히 카메라 앞에서 펼치는 르노를 보면 경외감이 들지 않을 수 없습니다.

빈스 본은 적어도 어쩌다가 괜찮은 대사들을 날리지만 존 파브로는 흉근 마사지나 자위와 관련된 농담들의 제물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본 영화의 각본도 담당했는데 아마 쓸 때는 그런 게 웃기게 보였나 봅니다. 제이슨 베이트먼이나 크리스틴 벨과 같이 이미 코미디 실력이 입증된 배우들은 일차원적 캐릭터를 간신히 지탱하고 그건 다른 배우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페이슨 러브와 칼리 호크는 그나마 좀 웃기긴 하지만 좋게 말해서 과체중 체형인 러브의 나체를 적나라하게 보여 줄 필요는 전혀 없었습니다(미국 쪽 포스터와 달리 영국 쪽 포스터엔 이 둘이 없어서 말이 많았는데 국내에선 이를 그대로 사용했더군요). 적어도 그들이나 영화 만든 사람들은 일하면서 보라보라 구경했으니 아쉬울 것 없었을 것입니다.

커플들이 네 쌍이나 등장하지만 그들 모두 단선적 캐릭터들인 가운데 별다른 진전은 보이지 않고 영화는 이들을 그냥 저글링하기만 할 정도로 게으릅니다. 그러다가 이야기를 끝내야 할 때가 되니 이들 각각에게 작위적 해피엔딩뿐만 던져주면서 기념 선물까지 안겨주는 걸 보면서 시큰둥해 하지 않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건 그렇고, 본 영화에서 크리스틴 벨을 보면서 전 그녀가 전번에 출연했던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가 문득 떠올랐습니다. 그 영화 속에서 하와이는 보기 좋았을 뿐만 아니라 거기엔 좋은 캐릭터들이 모여서 사랑스러운 코미디를 만들었습니다. 굳이 대화가 필요하다고 하지 않아도 거기엔 진짜 대화들이 있었지만, 본 영화에 제대로 된 대화가 있기라도 합니까?

 

P.S.  

1. 감독은 작년 연말에 즐겁게 봤던 [크리스마스 스토리]의 어린 주인공 랠피였던 피터 빌링슬리입니다.  

2. ‘테라피’가 아니라 ‘쎄라피’가 더 정확하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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