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는 없다 (2009) : 그건 내가 할 말이야 Movies

용서는 없다 (2009) Zero Star


 경인년은 갑작스러운 폭설 그리고 한파와 함께 막을 열었습니다. 일단 눈은 그쳤지만 기온은 극심하게 내려간 탓에 낮에도 날씨는 쌀쌀합니다. 이런 날씨에 불구하고도 밖에 나가야 할 때도 있으니 손난로는 필요하기 마련이고, 네이버에서 검색 결과를 훑어보는 동안 제게 가장 친숙하게 다가오는 제품은 전기 손난로가 아니라 일회용 화학 손난로였습니다. 그 옛날 여름에 냉각 팩들을 팔던 초등학교 문구점이 손이 시린 겨울날이 돌아오면 핫 팩을 팔았고 그와 크게 다르지 않은 핫 팩을 지금도 팔고 있는데 가격은 600원도 안 되고 몇 분 동안 주무르면 적어도 12시간 동안 따뜻해질 수 있습니다. 이런 좀 더 실용적인 방법이 있는데, 적어도 5000원씩이나 투자해서 장장 두 시간 동안 [용서는 없다]가 우리 심신을 꼬집고 때리고 헤집어대고 짓밟고 주물러 대서 장시간 열나게 만들 걸 허락할 이유가 있습니까?


이 불쾌하고 짜증나는 영화가 괜찮은 스릴러였다면 어쩌면 용서가 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영화의 줄거리는 지나가던 무슨 동물이 웃을 정도인 것은 기본이고 동정과 자비라는 단어가 전혀 떠오르지 않을 지경입니다. 줄거리 상의 이른바 교묘한 계획은 영화 속 주인공들이 평균 지능의 소유자들이라면 상영시간 절반도 지나가기도 되기 전에 제대로 돌아가지 않거나 아니면 금방 무너져 버릴 것이거든요. 이게 적어도 흥미진진하다면 모를까 영화 속의 계략은 주인공들의 멍청함과 무능력함뿐만 아니라 우연이나 억지에 너무나 많이 맡겨져 있는 탓에 별로 납득이 가지 않습니다. 범인을 잡았으면 영화 속 경찰은 왜 가택 수사를 빨리 하지 않고 왜 그리 시간 낭비 하는 겁니까? 그리고 무엇보다도, 일을 크게 저지른다고 노리는 대상이 100% 그 사건을 담당할 것이라는 확신이 도대체 어디서 나왔습니까?

그 문제의 대상은 명성 높은 부검의 강민호(설경구)입니다. 전북 군산시의 금강 하구에서 발견된 20대 여성의 토막 난 시체가 발견되었는데, 여차저차해서 그가 이 끔찍한 사건을 맡게 되고 사지와 머리가 몸통에서 절단된 가운데 거의 온전한 상태로 발견된 시체는 그에 의해서 부검됩니다. 한편, 몇 년 전에 그의 강의를 들은 적 있는 여형사 민서영(한혜진)은 다른 형사들과 함께 발견되지 못한 한 쪽 팔을 찾으려고 하다가 환경운동가인 이성호(류승범)를 유력한 용의자로 점찍고 그를 검거하지요.

별다른 증거가 없는데도 불구 이성호가 자신이 살인을 저질렀음을 순순히 자백하기 때문에 사건수사는 쉽게 해결될 것 같지만, 얼마 되지 않아 강민호는 자신이 이성호의 계략에 빠졌음을 알게 됩니다. 오랜 만에 해외에서 돌아와서 같이 오붓하게 살 예정이었던 그의 딸이 납치되었고, 이성호는 그에게 무서운 협박을 합니다. 만일 자신이 풀려나지 않으면 그녀가 죽게 될 것이라는 것이지요. 그러니 강민호는 그를 풀려나게 하기 위해서 아무도 모르게 갖은 일들을 해야 하고 그런 동안 잘못하면 자신의 경력을 망치게 될 수도 있는 지경까지 가버립니다. 이 와중에 민서영은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감지하기 시작하는데, 그게 사건 자체인지 아니면 왜 이리 부검의 선생이 사건에 깊이 쑤시고 다니는 지에 대해 아무도 질문을 하지 않는 것인지 저도 모릅니다.

제가 뭐라고 말해도 영화를 보실 분들이 분명 있으니, 이야기가 어떻게 돌아갈 지에 대해서는 자세히 말하지 않겠지만 영화가 온전한 사리분별 능력이 없다는 점은 지적하고 넘어가야 겠습니다. 처음엔 새만금이나 4대강을 참 어이없게 언급하면서 유치한 발상을 과시하지만(금강-금성, 그래서 비너스인가요?), 결국엔 모든 것이 어느 과거의 일에서 비롯된 복수극임이 드러납니다. 당연히 살인 사건 피해자뿐만 아니라 강민호는 그 일에 관련되어 있고 둘 다 잘못을 추궁당해야 하지만, 그들이 그럴 정도의 복수를 당할 정도로 잘못을 저지르기라도 했습니까? 특히 강민호의 경우, 옳은 선택을 내렸었다 해도 정의 실현에 도움이 되었을 지 전 확신이 안갑니다. 오히려 잠깐만 언급되고 보여 지기만 한 그 누구들에게 이성호가 자신의 분노를 쏟아 붓는 게 이치에 맞는데, 영화만큼이나 이성호는 그들을 엑스트라 취급하니 정말 말이 안 나옵니다. 그들 중 한 명을 설경구가 맡아야 했었습니까?

이렇게 엉뚱한 데에다 화풀이 하는 그를 이해하고 어느 정도 동정할 수 있었다면 어느 정도 괜찮았겠지만, 우리에겐 유감스럽게도 이성호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소중한 사람을 잃어서 괴롭다고 나중에 처량하게 얘기해 봤자 그는 아주 악랄한 인간 그 이상으로 다가오지 않습니다. 특히 아무것도 모르는 무고한 사람마저도 자신의 계획에 포함시키는 잔혹함을 고려하면 더욱 더 역겹게 보이지요. 그의 계획은 너무나 조잡하고 다른 주인공들은 다 그의 계획을 의도적이든 의도적이지 않았든 간에 도와주는 목적 이외에는 존재 이유가 없어 보입니다. 이리하여 이성호와 강민호 간의 대결 구도는 의도와 달리 성립되지 않아서 영화는 스릴러로서도 많이 실격입니다.

 이런 한심한 꼴을 지켜봐야 하는 것도 그러데, 영화의 여성혐오증적 태도는 제 신경을 참 많이도 건드렸습니다. 영화는 여성들을 그다지 사람 취급하지 않고 이는 그리 유쾌한 광경은 아닙니다. 두 주인공들이 각각 소중히 여기는 여자들은 동기 부여 그 이상의 역할을 하지 않는 도구들이고, 화면 안과 밖에서 여성들은 납치당하고, 능멸당하고, 모욕당하고, 집단강간당하고, 살해당하고, 사지절단당하고, 오장육부 여러 차례 헤집어지고, 가격당하고, 오럴 섹스 해야 하고, 그리고 목 졸려집니다(다행히 이 모두를 전부를 겪는 숙녀 분은 없습니다). 카메라는 몸통 전체보다 어느 신체 부위에 집착하는 것 같고 강민호가 시체를 손으로 감식하는 모습은 매우 꺼림칙하게 느껴집니다. 2009년은 [여배우들]과 함께 저 너머로 갔는데 비해, 올해 2010년 경인년 첫 주를 여성들을 물건 정도로 취급하는 이런 썩어빠진 영화로 시작해야 한다니 하늘도 무심합니다.

 그리고 이런 영화에 실력 있는 배우들이 나오는 걸 보니 충무로 어딘가에 노예 계약서들이 보관되지 않았나 하는 의심이 들 정도입니다. 불쌍한 한혜진, 그녀는 정말 졸렬한 대사들을 떠맡아야 했지만 적어도 그녀의 캐릭터는 다른 여성 캐릭터들의 처지에 비하면 비교적 나은 대접을 받았습니다(민서영은 앞에서 말한 일들 중 상대적으로 가벼운 것들 두 개 당했습니다). 우리 모두 다 설경구와 류승범이 좋은 배우라는 것은 알지만 그들은 쓰레기 같은 대사들로 가득 찬 이 유독 폐기물 처리장에서 벗어날 올 수 없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윤형사를 맡은 성지루가 많이 안 됐다고 생각합니다. 전혀 웃기지도 않는 짜증나는 대사들을 걸핏하면 남발하는 캐릭터를 연기하는 데에는 유체 이탈만큼이나 상당한 노력이 들었을 것입니다.

각본도 맡은 감독 김형준은 자신의 개인적인 고통으로부터 이야기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분명 그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고 그 고통은 상당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그런 종류의 고통을 공감하고 이해하게 만들기는커녕 훨씬 더 흉측하고 정 떨어지는 싸구려 괴물로 만들었고 그 결과 영화는 황당한 것은 기본이고 극도로 불쾌하기 그지없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고통과 분노에 대한 이야기라면, 이 세상엔 [인 더 베드룸], [미스틱 리버], (비록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레저베이션 로드]와 같은 더 나은 영화들이 있는데 이런 상식은커녕 예의도 없는 추레한 영화를 보러 추운 날 밖으로 나와야합니까? 보고 나면 체온이 올라가니 집으로 돌아갈 때 문제없겠지만, 제 말 믿으세요, 그냥 핫 팩 하나 주문해서 몸이나 덥히는 게 더 경제적입니다.


덧글

  • 라라 2010/01/07 23:57 # 답글

    민서영이 당한건 가격과 목졸림인가요?
  • fatman 2010/01/08 00:23 #

    예, 한데 직장에서의 고생까지 합하면 셋이군요.
  • 라라 2010/01/08 00:35 # 답글

    설마 직장에서 오러섹스? 그거 나오면 볼 사람 늘듯^^
  • fatman 2010/01/08 01:12 #

    아니요, 그건 다른 곳에서 다른 캐릭터가 합니다.

    직장에서 그 짜증나는 윤형사가 진저리나게 그녀에게 언어폭력을 가하거든요.
  • 라라 2010/01/08 01:19 # 답글

    흠..다른곳에서 스포까지 보고 평도 별로라 안 볼거지만

    티비에 나올 땐 잘릴 장면들이니 약간 아쉽군요

    영화관에서 본 부분이 짤린 장면으로 나오면 팥 없는 팥빵 먹는 기분이라

    실종도 그 장면이 짜르고 보니 영 ~~아니더군요

    나중에 분노나 그런 감정이입에서
  • 이닥 2010/01/09 19:55 # 삭제 답글

    감독의 개인 얘기에 대해는 전혀 알지 못해서 관련이 있는지 몰랐습니다.
    조연 배우들이 살아나지 못해서 아쉬웠습니다.
    맛깔은 조연들이 쳐주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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