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인 지구정복 (They Live, 1988) : 그들은 화성에서 안 왔습니다 Movies

화성인 지구정복 (They Live, 1988) ☆☆1/2

 초등학교 시절부터 비디오 가게들을 돌아다니는 동안, 희한한 것들을 많이 접하곤 했습니다. 사람들 시선 끌려고 원제목과 달리 괴상하게 바꾼 제목들의 몇몇 낡은 비디오들은 빌려 보지는 않아도 상당한 인상을 남기기도 했지요.[화성인 지구정복]은 그들 중 하나였고 촌스럽게 보이는 비디오 케이스와 한 번 접한 이후로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습니다. 꼭 봐야 하는 것이 아닌 것 같았고 제 예감은 15 여년 후 맞아 떨어졌습니다. 어젯밤에 카펜터의 다른 영화들과 함께 볼 때도 영화는 나름대로 흥미로웠지만 그들 중 가장 얕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화성인 지구정복]은 50년대 SF 영화들의 편집증적 공포의 방향을 180도 돌려놓습니다. 알고 보니, 외계에서 온 침입자들이 사람의 탈을 쓴 채 세상을 돌아다니고 있으면서 그들이 통제하는 인간들에게 복종을 은밀히 강요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50년대 SF 고전인 [신체강탈자들의 침입]의 콩깍지 외계인들은 공산주의에 대한 공포를 대변하는 존재였지만, 본 영화의 외계인들은 반대로 레이건 시대를 대변하고 그들은 하나같이 돈 많은 부자들입니다. 그들은 잘 먹고 잘 사는 동안 진짜 인간들인 서민들의 삶을 궁핍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이래서 경제가 어려운 마당에, 콜로라도에서 직장을 잃은 후 이리저리 떠돌다가 LA에 오게 된 노동자인 나다(로디 파이퍼)는 건설현장에서 일자리를 얻게 되고 직장 동료 프랭크(키스 데이비드)를 통해 빈민들 주거지에서 살게 됩니다. 그러다가 그곳 사람들을 도와주는 근처 교회가 수상하다 싶어서 가봤더니 거기엔 텔레비전에서 계속 나오곤 하는 해적방송을 하는 집단이 있었고, 안경점도 아닌데도 그들 창고에는 그저 평범하게 보이는 선글라스들이 꽤나 많이 있습니다. 얼마 안 되어 경찰이 그곳이 습격하고, 후에 나다는 그 장소에 남아 있던 선글라스들 중 하나를 끼어보게 되는데 그는 '제 눈에 제 안경'이라는 말을 생생히 실감하게 됩니다.

  영화의 가장 재미있는 부분은 나다가 선글라스를 통해 자신의 주위 세상들을 매우 다르게 볼 때입니다. 선글라스를 통해 세상은 흑백으로 보이게 되는 가운데, 사람 같지 않은 존재들이 보이고 이곳저곳에서는 맨눈으로는 보이지 않는 장치들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광고 간판들뿐만 아니라 표지판들, 책들, 잡지들 등에서 "복종해라"나 "소비해라"와 같은 명령이 굵은 글씨체로 떡 하니 쓰여 있습니다. 지폐에마저도 "이것이 바로 너의 신이다"라는 말이 쓰여 져 있지요. 나다가 외계인들의 정체를 알았다는 건 금방 들통이 나고, 그는 이리저리 도망치다가 비밀 저항 조직과 접하게 됩니다.

  이런 노골적인 설정을 시작으로 해서 나오는 황당한 것들은 꽤 즐길 만합니다. TV는 알고 보니 외계인들의 세뇌 도구였고 방송국 옥상에 놓인 큰 접시 안테나를 통해 사람들의 눈을 가리는 전파를 송출하고 있었다는 것이 드러납니다. 환경오염마저도 외계인들의 고향 행성과 비슷한 환경을 만들기 위한 그들의 음모라고 하는데, 그들의 외양이 해골 비슷한 얼굴의 살아있는 시체들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그리 놀랄 일은 아닙니다. 그런가 하면, 그들이 그 시절 공화당원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레이거노믹스에 대한 영화의 또 다른 야유를 엿볼 수 있습니다.

  이런 재미에도 불구 영화는 전체적으로 그리 만족스럽지 못합니다. 페이스는 늘어진 가운데 본격적인 이야기를 할 때까지 상영 시간 절반 이상이 가버립니다. 남은 짧은 시간 동안 이야기를 후다닥 끝나다 보니 이야기가 엉성하게 마무리되는 동안 두 가지 클리셰들이 머릿속에 맴돌게 되었습니다. 하나는 누구나 다 총을 두두 쏘지만 늘 맞는 사람들은 항상 엑스트라들이란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말하는 악당 신드롬에 걸린 듯한 캐릭터가 나온다는 것입니다. 복장들이 어울리지 않다는 것에 전혀 개의치 않으면서 그는 주인공들에게 참 많이도 말하고 많이도 보여줍니다. 외계인들만 홀로 사업을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는 게 드러나지만(그들이 여는 일종의 주주총회엔 그들만 있는 게 아닙니다) 이는 그저 곁가지로 스쳐지나가니 실망스럽습니다.

  영화 속 B급 액션 장면들은 그리 대단하지도 않는 편이고 싸구려 티가 풀풀 나서 흥분되기 보다는 그런 싸구려 모습에 재미있어 할 확률이 더 큽니다. 영화를 본 사람들이 종종 언급하곤 하는 뒷골목에서의 나다와 프랭크의 격투 장면의 경우, 원래는 1분도 안 되었지만 여기에 매진하는 배우들을 보고 카펜터가 5분 넘게 만들기로 한 이 긴 장면은 볼만 하지만 어이없기도 합니다. 세상 좀 제대로 보아야 하는 건 시급한 일이긴 하지만, 선글라스 한 번 껴 보라고 하다가 프로 레슬링 같은 상황이 계속 연장되는 광경은 전체 이야기와 그리 어울리지 않습니다. 젠장, 그 놈의 선글라스가 웬수지.

  [화성인 지구정복](참고로, 영화에서 외계인들이 화성에서 왔다는 얘기는 없습니다)은 어느 말도 안 되는 설정을 갖고 풍자를 재미있게 하기도 하지만 이를 완전히 밀고 가지 않고 망설이다가 결국 단순한 총격전으로 모든 것을 황급히 마무리 지어 버립니다. [뉴욕 탈출]에서처럼 결말에서 영화는 가운데 손가락을 치켜들고 그에 따라오는 광경들은 작은 웃음을 남기긴 하지만, 전체적으로 좋은 감상 경험은 아니었습니다. 그래도, 21세기에 들어오면서 본 영화를 좀 더 쉽게 찾을 수 있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 낡은 비디오와 달리 제대로 된 화면 비율에서 본 영화를 보는 게 좋긴 합니다.

  저명한 국내 영화 평론가이신 듀나는 10년 전에 쓴 본 영화 리뷰에서 시대 분위기상 국내 관객에게 더 어필할 수 있을 것이라고 평하셨습니다. 그런데 이명박 대통령 각하께서는 지금 말 그대로 잃어버린 10년을 우리에게 되찾아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분의 정권은 그것도 모자라 미디어 법까지 동원하고 있습니다. 단순한 B급 영화 감상을 위해 이렇게 친절하게 신경 써 주시니 어찌 감히 그 분을 싫어할 수 있겠습니까? 신설 방송국 건물들 옥상 위에 뭐가 설치될지 전 궁금합니다.


P.S.

 영화는 레이 넬슨의 단편 [Eight O'Clock in the Morning]을 원작으로 했는데, 스티븐 킹의 단편 [The Ten O'Clock People]도 비슷한 설정입니다. 여기선 담배 끊으려는 사람들만이 주로 유력 인사들로 위장한 괴물들이 돌아다니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들도 조직을 형성하지요.  


덧글

댓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