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갖 끔찍한 만행들을 2차 세계 대전 동안 저지른 나치는 분명 악입니다. 그러니 이에 대항하는 것은 당연히 선입니다. 하지만 이런 확연한 흑백구별이 있음에도 정작 주인공들은 그 사이의 회색 지역에 놓여 있고 그 속에서 고민하고 지쳐갑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정당하다고 믿으면서 목표 대상들을 지시 받은 대로 처단합니다. 하지만, 그 어떤 정당성이 있든 간에, 살인은 결코 쉽지도 않고 그 이후에도 머리에서 쉽게 떨쳐 버릴 수 없는 행위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잡혀 죽을 가능성은 가면 갈수록 높아져만 갑니다.
덴마크 영화 [플레이 & 시트런]은 요즘 들어와 꾸준히 나오고 있는 2차 세계 대전 영화들 중 하나인데, 이번엔 나치 점령 하에서 활동했던 덴마크 레지스탕스 조직원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라스 앤더슨과 함께 각본을 맡은 올레 크리스티안 마드센은 실제 두 레지스탕스 조직원들의 실화를 바탕으로 했는데, 플레임(플라멘)은 염색할 때 실수로 머리가 붉어졌고 시트런(시트로넨)은 시트로앵 자동차 공장에서 일하면서 활동한 경력 때문에 그들에게 그런 별명들이 붙여졌다고 합니다. 이 두 인물들을 주인공으로 한 가운데 마드센은 본인 자신도 인정했다시피, 멜빌의 [그림자 군단]으로부터 다분히 영향을 받은 이야기를 에피소드 형식으로 전개해 갑니다.
연합군의 노르망디 상륙이 있기 직전인 1944년 5월, 플레임(투레 린드하르트)와 시트런([카지노 로얄]의 피눈물 악당보다 훨씬 꾀죄죄하게 보이는 매드 미켈슨)은 코펜하겐을 중심으로 해서 활동하면서 이름을 날리는 조직원들입니다. 상부의 명령대로 그들은 주로 나치협력자인 덴마크 인들을 암살하는데, 플레임이 이들을 총으로 쏴 죽이면 이에 즉시 시트런이 차를 몰고 오고 그들은 신속히 자리를 뜹니다. 그러다가 그들의 처단 대상들은 단순히 배신자들에만 국한되지 않게 되고 그런 동안 그들의 굳은 원칙도 흔들려지게 됩니다. 살인을 기꺼이 할 의지가 있는 플레임은 적어도 여자만은 죽이지 않으려고 하고 이런 일들에 지쳐가는 시트런은 운전사로만 활동하려고 하지만, 어느 덧 그들은 자신들이 정했던 선을 넘게 됩니다.

그럼에도 플레임과 시트론은 비교적 오래 돌아다니면서 활동했습니다. 그 튈 수 밖에 없는 붉은 머리에도 불구하고 모자도 안 쓴 플레임은 나중에서야 모자를 쓰기 시작하지만 쉽사리 붙잡히지 않고 그는 이에 자신만만합니다. 그들과 다른 조직원들이 자주 오는 술집에 게슈타포 대장 호프만([블랙북]과 [발키리]에 출연했고 곧 타란티노 신작에서도 보게 될 크리스티안 베르켈)이 와도 별 일 없기도 하지요. 플레임과 시트론의 목표물들은 중 몇몇은 자신들뿐만 아니라 상대방의 위치를 예리하게 꿰뚫어보기도 하는데, 호프만은 그냥 단순한 나치 악당은 아니고 그는 한 상황을 냉철하게 파악하기도 합니다.

2차 세계 대전 동안 지하 저항 운동에 참여한 사람들은 분명 자신의 목숨을 내걸었습니다. 하지만, 자주 얘기되어 온 프랑스 레지스탕스도 전쟁에 그리 큰 영향을 주지 않았듯이 나치에 대항한 다른 나라들 레지스탕스들도 그랬고 덴마크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이는 본 영화가 전달해주듯이 그들의 일은 결코 깨끗하지 않았습니다. 플레임과 시트런은 자신들이 옳다고 보지만 그 우울한 세상 속에서 그들은 흔들려 갑니다. 살인과 같은 폭력은 결코 씻어낼 수 없는 일이 아니고 여기엔 예상치 못한 피해가 따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여러 의심들에도 불구 절박하게 자신들의 대의에 매달립니다. 사실, 그 길 밖에 없습니다.
덧글
다른 영화 리뷰도 잘 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