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취인불명 (2001) : 탈출구 없는 사람들 Movies

수취인불명 (2001) ☆☆☆


 그들은 정말 갑갑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거기서 벗어날 방도가 거의 보이지 않는 가운데 그들은 받아들일 수 없거나 받아 들이지지 않아서 막막하고 나고 고통스럽습니다. [수취인불명]은 이 불행한 사람들의 우울한 이야기를 1970년대의 한 마을을 무대로 해서 펼쳐 나갑니다. 처음엔 접할 때는 평범한 조용한 시골 마을 같지만, 그들의 이야기를 지켜보다 보면 이 마을의 풍경은 어느 덧 황량하고 각박하게 보입니다. 비록 영화엔 여러 만족스럽지 않은 부분들이 있지만, 이야기 중심에 놓인 절망과 아픔만큼은 무시할 수 없습니다.


마을에 사는 사람들에겐 맞은편에 있는 미군 기지는 50년대 이후 생활의 일부가 된 지 오래입니다. 늘 군용 비행기는 이륙하는 모습이 저 멀리 보이고 어디선가 헬리콥터 소리가 들려오곤 합니다. 미군들이 아침 행군이나 군사 훈련으로 마을을 거치는 것은 그다지 이상한 일이 아닌 가운데, 부대 정문 앞에서 학생들은 군인들로부터 포르노 잡지를 삽니다. 개장수 개눈(조재현)은 버려진 군사시설을 거처로 삼은 가운데 개들을 기르고, 마을에 버려진 군대용 버스에는 창국 어머니(방은진)과 그녀의 아들 창국(양동근)이 함께 살고 있습니다.

좀 정신이 나간 창국 어머니는 끊임없이 자신을 두고 미국으로 간 미군 남편에게 아들 사진을 동봉한 가운데 편지를 끊임없이 쓰고 보내지만 마을 집배원 아저씨는 '수취인 불명'란 직인이 찍힌 채로 이를 반송해줍니다. 한 때는 미국으로 갈 수 있다고 희망을 가졌지만 이제는 그 희망이 사라진 창국은 그런 어머니가 지긋지긋하게 보여서 그녀에게 폭력을 휘둘러댑니다. 하지만 그녀만큼이나 그에게도 별다른 길이 보이지 않습니다. 혼혈이니 '튀기'라는 소리까지 듣는 가운데 주어지는 일이라고는 어머니와 가까운 관계인 개눈 밑에서 개 잡는 것밖에 없는데 이는 그리 유쾌하지 않습니다. 큰 미군 외투를 입고 군화를 신은 모습을 보면 마치 덩치 큰 애와 같은 창국을 개눈이 다루는 방식은 어머니의 폭력적인 남자친구가 그녀의 폭력적인 아들을 대하는 정도에 불과하지 그 이상은 아닙니다. 일하러 갈 때 그는 창국을 개 우리에 태운 채 오토바이를 몰고 갑니다.

창국만큼이나 지흠(김영민)과 은옥(반민정)의 상황도 갑갑하긴 마찬가지입니다. 6.25 중에 전사했다는(시체를 찾지 못했습니다) 아버지 덕분에 국가유공자 연금이 들어오긴 하지만 은옥의 가족은 형편이 빠듯합니다. 어릴 때 오빠에 의해 한쪽 눈에 백태가 끼게 된 은옥은 다친 한 쪽 눈을 가린 가운데 스스로 자신을 가두어 왔습니다. 6.25 때 자신의 활약을 동네 사람에게 늘 자랑하는 아버지에 내성적인 아들인 지흠은 읍내 화실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그는 은옥을 좋아하게 되지만 그녀는 그를 잘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고, 그도 자신의 한계를 여러 번 아프게 실감합니다.

한국의 멍든 면을 대변하는 세 주인공들의 상황은 이 정도면 비참하지만, 상황은 그보다 더욱 나쁘게 굴러가서 그들을 절망스럽게 만듭니다. 마을의 다른 사람들도 그들보다 비교적 나은 편이지만 그들에게 딱히 밝은 미래가 보이는 것은 아닙니다. 개눈은 계속 개장수로 있을 것이고 지흠의 아버지(명계남)는 다른 동네 사람들과 활 쏘면서 계속 옛날 자랑이나 할 것입니다. 은옥과 우연히 알게 되어 그녀와 가까워지고 그녀의 눈 치료를 도와주는 미군 제임스(밋츠 마럼)도 답답합니다. 그는 마약과 함께 유일한 그의 위안인 그녀에게 친절하게 대하지만 이들 관계는 욕망에 가깝습니다.

저에게는, [수취인불명]은 [아모레스 페로스] 이후 처음으로 영화 시작에 제작 시 동물은 해를 입지 않았다는 자막이 나오는 영화인데 그건 꼭 믿으셔야 할 것입니다. 주인공들에게 만큼이나 영화는 개들에게 가혹하게 대하는데, 은옥이 애지중지하는 강아지가 겪는 일들은 결코 부러운 게 아닙니다. 그런가 하면 여러 크고 작은 일들을 통해 각본은 가차 없이 주인공들을 끌고 내려가서 이에 절로 움츠릴만한 순간들이 터져 나오고, 겨울철 논밭에서 일어날 수 있는 괴상한 형태의 죽음이 등장하기도 합니다. 기회가 보이고 희망이 보이기도 하지만, 결국에 주인공들에게 남는 것은 또 다른 아픔 밖에 없습니다.

좋은 캐릭터들 덕분에 이 어두운 이야기는 충분히 흥미롭고 이는 실력 있는 배우들에 의해 받쳐지고 있습니다. 양동근은 내성적인 모습 뒤에 끓는 분노를 조용히 표출하고, 방은진은 아주 정떨어질 수 있는 캐릭터에게 동정할 면이 있게 합니다.  김기덕과 여러 번 협연해 온 조재현은 캐릭터 이름에 걸맞게 눈을 부라리고 다니고, 반민정과 김영인은 그들 간의 엇갈린 관계를 대사가 그리 많지 않아도 잘 전달합니다. 제임스를 맡은 밋츠 마럼은 영화의 가장 약한 부분이자 단점인데 그와 관련된 부분들은 튀지 않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는 전문 무대 연극이 학예회 연극으로 갑자기 전환된 것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그 이외에 후반부에 상황을 너무 과하게 몰아가는 등의 여러 단점들이 있지만, [수취인불명]은 전반적으로 불쾌하지만 동시에 아픈 비극으로 다가옵니다. [섬]처럼 저예산 영화이니 투박하고 거친 구석들이 여기저기서 드러나 보이지만, 시골 마을 풍경은 황량하지만 간간히 아름답게 보이기도 합니다. 그런 세상 속에서 주인공들은 절실히 원하고 기다립니다. 그러나 세상이나 그들도 그리 시간을 정확히 지키는 편이 아니니 그들은 늘 낙담하고 엇갈립니다. 그리고 더 이상 참지 못한다 해도 나아지는 게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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