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론 - 세상에서 제일 잘난 놈들 (Enron: The Smartest Guys in the Room, 2005) : 세기의 사상누각 Movies



엔론 - 세상에서 제일 잘난 놈들 (Enron: The Smartest Guys in the Room, 2005) ☆☆☆1/2


2000년에 엔론은 미국에서 가장 잘 나가는 회사들 중 하나였습니다. 포춘의 500대 기업 목록에서 7위에 올랐고, 주식 가격은 주당 90달러 이상까지 다다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얼마 안 되어서 모든 게 만천하에 드러나서 엄청난 세기의 금융 스캔들이 터졌고 엔론은 침몰해 버렸고 주식 가격은 주당 10센트밖에 되지 않게 되었습니다. 경영진들이 회사가 돈을 벌지 않는다는 사실을 숨기고 돈이 계속 돌아가는 양 꾸미는 동안 손해는 계속 불어났고 그 결과 피해는 막대했습니다. 알렉스 기브니의 [엔론 - 세상에서 제일 잘난 놈들]은 이 거대한 금융재난이 어떻게 일어나게 되었는지에 대해 명확하면서 소름끼치게 보여줍니다.


                                                                       엔론 창립자 케네스 레이

1985년 휴스턴에서 두 회사 간의 합병으로 생긴 엔론은 주로 천연가스 공급을 통해 수익을 얻어왔습니다. 그러다가 후에 엔론은 에너지 거래 시장을 개척해서 돈을 벌려고 한데 이어 다른 분야에도 손을 댔지만 사실상 수익은 별로 없었습니다(그들은 심지어 날씨(!)도 거래하려고 했습니다). 이렇게 돈을 못 버는 회사임에도 불구 엔론은 겉으로 보기에는 날이 갈수록 승승장구하는 회사로 포장되고 가면 갈수록 이 회사가 뭘 하는지에 대해 설명하기 어려울 지경까지 가버리게 됩니다. 엔론은 대차 대조표도 안 내놓으니 알 길이 있겠습니까? 휴스턴의 본사 건물은 화려하긴 하지만, 실상 엔론은 쌓여가는 빚더미에 의해 가라앉고 있는 타이타닉이나 다름없는 회사였습니다.

자신들의 회사가 참담할 정도로 형편없기 짝이 없는 부실기업이란 사실을 케네스 레이와 제프리 스킬링 등의 중역진들이 어떻게 감추어 왔는지를 영화는 상세하면서 명료하게 보여줍니다. 회사는 계속 돈을 막대하게 잃어버리고 있지만, 경영진들은 이를 숨길 방법들을 생각해 냈습니다. 이들 중 하나는 'Mark to Market' 이란 회계 조작 수법인데, '가상적 미래 가치' (Hypothetical Future Value)라고도 설명될 수 있는 이 방법에선 상당한 이익이 '예상되는' 일을 하는 것만으로도 그 '예상 이익'이 실제 수입인 양 둔갑합니다. 덕분에 정말 전혀 도움이 안 되는 발전소가 완공조차도 안 되었는데 수익으로 변신합니다. 실제는 상당한 손해 덩어리이지만 말입니다.

다른 쪽에서는, 재무책임자로 고용된 앤드류 패스타우가 국외에다 유령회사들을 만들어 놓고 엔론의 손실을 거기에다 떠넘겨버렸습니다. 정지 버튼을 누르고 잠시 몇 분간 지켜봐야 이해될 수 있는 복잡한 거래망을 통해 돈은 이리저리 옮겨지고 어느 새 손실은 감추어집니다. (그나저나 유령 회사들 이름들도 나름대로 그럴 듯하게 지어져야 쉽게 들킬 수 없지만, 이 때 만들어진 유령회사들 중 하나의 이름은 M. Yass입니다. -_-) 이렇게 하여, 사분기 보고 때마다 엔론은 순이익을 얻었다고 발표할 수 있게 되고 점차 성장(?)을 하는 겉모습 덕택에 주식 가격은 오르고 또 오릅니다.

 

                                                                엔론의 CEO였던 제프리  스킬링
 
이 감추어진 사태가 가면 갈수록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었는데, 아무도 엔론의 이 두드러진 상승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습니다. 일단 엔론은 자신의 회사를 평가하는 사람들에게 떡고물을 안겨주었고 당연히 그들은 나쁜 소리를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시티뱅크와 체이스와 같은 명망 높은 은행들은 문제점들을 감지했겠지만, 이익이 눈앞에 보이니 기꺼이 엔론의 손실을 감추어줄 회사들에 돈을 퍼부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엔론이 미래를 향한 선두주자 기업이라고 광고할 때마다 'Ask Why?' 라는 문구를 자주 사용했지만, 엔론의 실적에 대해 단순한 의문을 품게 된 베서니 맥클린이 쓴 "Is Enron Overpriced?"라는 기사가 포츈에 나오고 나서야 이 "휘발유 위에 세워진 카드의 집"은 마침내 무너졌고 그 결과 엄청난 피해가 생겼습니다.

감독 알렉스 기브니는 베서니 맥클린과 피터 엘킨드가 쓴 동명의 넌픽션에 바탕을 두어 이 다큐멘터리를 만들었습니다. 여러 기존 곡들을 삽입해서 이 세기의 금융 범죄가 벌어지는 모습에서 웃음을 자아내는 것에서 마이클 무어의 영향이 보이지만, 그의 다큐멘터리는 훨씬 침착한 가운데 엔론에 대해 잘 알려지지 않는 사실들을 피터 코요테의 내레이션과 함께 냉정하게 드러냅니다. 원작을 쓴 두 작가를 비롯해서, 엔론의 부정을 까발린 내부 고발자인 전직 중역 셔론 왓킨스를 비롯한 엔론에서 일했던 사람들, 금융 분석가, 전직 캘리포니아 주지사 등을 인터뷰하는 동안, 여러 자료들이 차례차례로 등장하는데 이들 중 몇몇은 믿겨지지 않을 정도입니다. 엔론 중역진들은 자신들의 범죄 행위를 갖고 코메디 단막극을 만들었고 심지어 비디오로 남기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영화에 등장하는 엔론 사 소속 거래 중개인들의 녹음 기록은 웬만한 블랙 코메디를 뛰어 넘습니다.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의 팬이신 제프리 스킬링은 CEO 때부터 고용인들을 경쟁 상태로 몰아 붙였고 매년 15% 하위권 실적을 올린 고용인들을 해고했습니다. 그 결과 엔론 중개인들은 아주 거침없는 경쟁을 하곤 했고, 캘리포니아 주가 에너지 사업 규제를 완화함에 따라 캘리포니아는 엔론의 거대한 도박장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상당수의 발전소들의 전기 공급량을 고의적으로 상당하게 줄이게 만들어서 전기 거래에서 돈을 많이 벌었습니다. 이로 인해 캘리포니아 주민들이 정전 사태로 많이 고생하니 '할머니 밀리'에 대해 농담하면서 웃기도 하는 그들은 산불 때문에 발전소 작동 중지할 가능성이 전해지자 실적 올리겠다고 신나해 합니다("Burn, baby, burn!").

이처럼 돈을 많이도 날리면서 상당한 민폐를 끼쳤던 엔론은 무너질 때도 많은 피해를 입혔습니다. 부정 행위에 깊숙이 관련된 아서 앤더슨 회계 회사는 오래 쌓아 온 신용을 순식간에 잃어서 같이 침몰해버렸습니다. 엔론 본사에서는 수많은 고용인들이 30분 안에 자리 정리하고 거리 밖으로 나와야 했습니다. 그것도 모자라서 엔론은 그들의 연금을 자사 주식으로 바꾸는 동안 날려 버렸는데, 포틀랜드의 어느 직원은 자신이 쌓은 24만 8천 달러의 연금이 1200달러로 줄어드는 일은 당해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중역진들은 걱정 없다고 직원들과 주주들에게 얘기하곤 했고 그 동안 미리 자기들 돈을 챙겼습니다.

비록 이 일에 책임 있는 중역진들은 기소되었지만, 이 잘난 분들이 대형 사고를 치게 만든 것에 방조한 체계는 별로 변함없습니다. 그 이후로 금융 범죄에 대한 법이 강화되었고 엔론은 아직도 자주 얘기되곤 하지만, 이런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으리란 보장은 없습니다. 스킬링과 같은 사람들은 기회가 주어지만 뭔가를 해낼 수 있는 사람들이었지만, 도박꾼 같은 이들을 억제할 수단도 필요합니다. 회사가 캘리포니아 주에게 막대한 손해를 안긴 가운데도 케네스 레이는 정부의 규제 완화를 주장했고 영화가 살며시 얘기하듯이 그는 부시 父子와 가깝습니다. 왜 이리 '비즈니스 프렌들리'가 으스스하게 들리는 것일까요?



P.S.

본 영화가 아카데미 다큐멘터리 상 후보에 오르고 DVD로 발매될 쯤에 엔론 스캔들은 막을 내렸습니다. 제프리 스킬링은 현재 감옥에서 24년형을 살고 있고 앤드류 파스토우는 협조한 대가로 6년형을 살고 있습니다. 반면 케네스 레이는 실형 선고 받기 몇 달 전에 심장 마비로 사망했습니다. 그는 최대 40년형을 살 수 있었습니다.


덧글

  • 2009/06/19 22:23 # 삭제 답글

    이 영화를 보고 싶은데 어디서 구할 수 있죠?
  • fatman 2009/06/20 18:19 #

    전 DVD로 구매해서 봤습니다.
  • 이경래 2009/08/23 22:13 # 삭제 답글

    엔론의 붕괴 과정을 소개한 위의 DVD를 관심 있게 여러 차례 보았습니다. 엔론이 무너지면서 미국의 자본주의 붕괴를 외치던 당시의 상황이 생생하게 떠오릅니다.
  • 2009/09/18 07:08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hodori 2009/10/18 15:39 # 답글

    안녕하세요. DVD를 어디서 구매할 수 있죠? 아무리 찾아봐도 없던데요
  • fatman 2009/10/20 00:03 #

    전 아마존에서 구매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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