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더 (2009) ☆☆☆1/2
영화들을 보다 보면 가끔 어떤 영화가 친숙한 배우의 이미지를 뒤집거나 혹은 밀어붙임을 통해 우리가 보지 못했던 것을 보여주어서 강렬한 인상을 남깁니다. TV에 별 신경을 안 쓴 저도 어린 시절 때부터 김혜자의 이미지와 연기에 익숙해져 왔고 영화에서 그녀가 나오면 뭘 기대해야 할 지 잘 알고 있습니다. [마요네즈]에 나올 때도 그녀는 누군가의 엄마였고 감독 봉준호의 [마더]에서 그녀는 어머니로써 그 전과 별 차이가 없는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그러나 그녀를 따라다가 보면 우리는 많이 두려워하게 됩니다.

봉준호는 전작 [살인의 추억]에 이어 [마더]는 비교적 평범하게 보이는 시골 마을이 무섭게 보여 질 수 있음을 매우 인상 깊게 보여줍니다. 영화의 배경인 한 시골 마을은 고속도로 대신 국도로 여행하던 도중에 마주칠 법한 사실적인 장소이고 저의 할머니 집 근처 동네 읍내의 분위기를 금세 연상시켜서 친숙했습니다. 하지만 밤이 되면 사정이 달라지고 어둑한 골목길을 따라가다 보면 불안감이 스멀스멀 기어져 나와서 두려움을 절로 느껴집니다. 그 때 그 장소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에 대한 의문이 우리를 끌어당기는 가운데, 그 마을이 겉과 속이 많이 다를 수도 있을 가능성도 튀어나옵니다.
엔드 크레딧에서 그냥 '마더'로 지칭되는 어머니(김혜자)는 읍내 약제사로 일하면서 빡빡한 생계를 꾸려나가는 사람입니다. 가끔 동네 사람들에게 불법 침술도 하는 그녀에게는 아들 도준(원빈)이 있는데, 머리가 모자란 티가 확연히 보이는 철없는 아들은 친구 진태(진구)와 함께 돌아다니면서 사고를 치곤합니다. 최근엔 그들이 골프장에서 난동을 부려서 어머니는 직원들을 위해 음료수 박스를 들고 파출소를 방문해서 아들을 데리러 옵니다. 이런 일이 한두 번 있는 것도 아닌 것 같지만, 어머니는 그럼에도 여전히 그에게 백숙을 식사로 차려주면서 아들 걱정을 합니다. 하지만 아들은 이에 별 신경도 안 쓰고 곧바로 밖으로 나돌아 다닙니다. .
한데 그 날 밤, 한 여고생이 살해당하고 한 증거물이 현장에서 발견되었으니 용의자가 된 도준은 경찰에게 잡혀갑니다. 시골 마을은 그리 많이 달라진 것은 없지만, [살인의 추억]과 달리 21세기에 들어 온 [마더]는 현장감식반 사람들이 현장을 잘 보존하고 영화 나중에서는 DNA 감식도 금방 가능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여전히 파출소 그 어딘가에는 어둑하고 허름한 공간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 공간에서 시골 경찰관들은 [살인의 추억]에 비해 비교적 용의자 인권 보호에 신경 쓰는 편이지만, 책상 서랍에는 사과들이 많이도 들어가 있습니다. 일어난 일은 끔찍하지만, 사건 현장의 등장은 일상적인 가운데 시체를 쳐다보는 경찰 3인조의 모습을 보여 주는 화면 구도는 묘한 유머가 있습니다.

예고편에서 보이다시피, 영화는 의지 강한 어머니의 감동적인 이야기는 아니고 오히려 극단적이고 맹목적으로 가는 모성에 대한 소름끼치는 이야기입니다. 어머니는 쉽게 아들뿐만 아니라 남들에게 눌리는 사람이지만 아들 밖에 안 보이는 그녀는 정말 막 나갑니다. 증거물을 찾기 위해 탐정 일을 하기도 하고 구하기 힘들다고 했던 돈도 직접 구해서 남의 도움을 받기도 합니다. 영화는 이 방향으로만 죽 나아가고 이 단순함 속에서 모성이 어디까지 가는지에 대해 보여준다는 목표가 확연히 보이니 이야기가 어디에 도달하게 될지 짐작이 가능합니다. 그럼에도 영화는 무척 효과적입니다. 캐릭터들을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기 때문에 어느 순간 누군가의 말이 방아쇠가 된다는 것을 금세 알기 때문에 가슴은 철렁거립니다.
[마더]에서는 이야기가 진행되는 동안 요란하지 않아도 관객들의 시선을 쥐어 잡는 순간들이 등장합니다. 증거물을 찾으려고 하다가 영화가 19세 미만 관람 불가 판정을 받게 된 이유를 목격하게 되는 곤경에 빠지게 되는 장면은 조용하지만 관객석을 그보다 더 조용하게 할 정도로 긴장감이 팽배합니다. 어느 사실을 알자마자 그녀가 한밤중에 밖을 나가서 자신만큼이나 혹은 자신보다 이상한 캐릭터를 찾아가서 만나는 장면은 [블레어 윗치]의 어느 장면이 연상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어둡거나 밝지 않는 공간들에서 진행되어도 이를 배경으로 한 배우들의 얼굴에는 스산한 면이 있습니다.

봉준호의 [플란더스의 개]를 아직까지 완전히 보지 못했지만, 2003년에 개봉할 때 본 [살인의 추억]은 그 이후로 다시 들추어 본 적이 없어도 여전히 그 때 경험이 머릿속에 생생하게 남아 있는 작품이었습니다. 봉준호는 유머와 두려움의 기이한 조합 속에서 흥미진진하고 인상적인 수사 드라마를 선사했고, 그에 이은 [괴물]에서도 B급 괴물 영화와 가족 드라마라는 특이한 시도에 성공했습니다. 이 두 영화들과 [마더]에서 발버둥 쳐도 결국엔 무력한 개인들의 모습과 그들 위의 무능한 체계에 대한 비난을 볼 수 있겠지만, 결국엔 모두 이야기 자체로써 깊숙이 다가옵니다. [마더]는 이들 중 가장 꾸밈없고 단순하지만 다른 두 영화들못지 않게 강렬하게 다가옵니다. 봉준호에게는 같은 도구를 사용해서 우리를 웃게 하다가 나중엔 섬뜩하게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나저나, 올해 초에 [똥파리]에서 아버지라는 정말 끔찍한 존재임을 암담하게 보여준 지 얼마 안 되어 그 반대쪽에서 다른 어두운 이야기를 하는 영화를 접하는 일은 야릇한 기분입니다. 아버지와 자식의 관계도 끔찍하게 질기지만, 어머니와 자식과의 관계는 갑갑하게 질깁니다. 시작부터 우리와 몇 개월간 함께 있어온 어머니들은 우리를 위해 무슨 일이든 할 자세가 있기 마련이고 [마더]는 이를 소름끼칠 정도로 논리적 방향으로 밀고 나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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