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무늬 파자마를 입은 소년 (The Boy in the Striped Pajama, 2008) : 참혹한 현실에 눈 뜨는 동심 Movies



줄무늬 파자마를 입은 소년 (The Boy in the Striped Pajama, 2008) ☆☆☆

 

영화에서 주인공 브루노가 어머니의 지시에도 불구 뒷문으로 들어가서 집 뒤의 공간으로 나가는 모습을 볼 때 상당한 친밀감이 느껴졌습니다. 어린이들은 호기심이 많아 저 너머에 뭐가 있을까 궁금해 하고 가끔 그걸 충족시키곤 합니다. 제 경우엔, 유치원 시절 서울 성북 지하철역 바로 옆에 있는 미룡 아파트에 살던 저는 단지 너머 다른 아파트들에 흥미가 쌓이다가 결국 그 먼 곳까지 갔습니다. 그 일을 선명히 기억하기 때문에 저는 브루노를 무척 잘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애들에겐 모든 것은 신기하게 보이고 이리 저리 돌아다닙니다. 그러다가 브루노는 친구를 사귀게 되지만 그들의 우정은 그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세상 앞에서 위태롭습니다.


문을 열고 들어가 다른 세상을 직면하는 소년의 이야기라는 설정을 들으면 판타지 같지만, [줄무늬 파자마를 입은 소년]은 실은 우화 형식을 빌린 홀로코스트 영화입니다. 덕분에 [인생은 아름다워]만큼이나 본 영화는 비난을 상당히 많이 들었습니다. 영화가 미국에서 개봉되고 나서 엔터테인먼트 위클리에서는 그 해 최악의 영화들 중 하나로 뽑기도 했지요. 하지만 적어도 그 우화엔 상당한 흡인력이 있기 때문에 이야기상 여러 허점들은 그냥 넘어갈 만합니다. 그리고 [인생은 아름다워]의 반대편에 있는 영화답게, 제 시선을 잡는 동안 [줄무늬 파자마를 입은 소년]은 그리 자세히 말할 수 없는 결말로 조용히 전진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중인 베를린에서 브루노가 학교 친구들과 같이 즐겁게 어울려 뛰어다니는 모습으로 영화는 시작됩니다. 한데 이런 즐거운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군인인 아버지가 승진되어 곧바로 가족들이 외딴 시골로 가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친구들과 헤어지는 것에 낙심한 브루노는 조용한 시골의 저택에서 무료한 시간을 보내게 됩니다. 책 말고 유일한 볼거리라고는 집 뒤편 가까이 있는 ‘농장’인데 어린 그는 왜 거기 있는 사람들 모두 줄무늬 파자마를 입었는지 궁금해 합니다. 부모님에게 물어보지만 자신들과는 다른 사람들이라는 모호한 답변을 얻을 뿐입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브루노는 저택 뒤로 살짝 빠져나가 숲을 거쳐 ‘농장’에 접근하게 됩니다. 우연히 그는 거기에 사는 슈무엘이란 소년과 만나는데, 둘 다 외로웠기 때문에 농장을 둘러싼 철조망을 두고 둘은 친해지게 되지요. 그런 동안 브루노는 슈무엘과 다른 농장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지에 대해 가정교육 등을 통해 듣게 됩니다. 하지만 자신이 직접 체험한 것과 자신의 주위 사람들이 유대인들 대해서 말하는 것은 전혀 다르니 저절로 의문을 갖게 됩니다.

국내에서도 번역된 존 보인의 동명 원작 소설에서처럼 영화는 전체 그림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브루노의 시선을 따라가고 나머지 공백을 우리가 채워가게 합니다. 히틀러의 생각을 맹신적으로 따르는 누나와 달리, 브루노는 슈무엘이나 집에서 일하게 된 농장사람 파벨을 통해 나름대로의 생각을 가지게 됩니다. 하지만 동시에 그는 어린애이고 잘 속기도 합니다. 우연히 본 기가 막힌 선전영화를 통해 슈무엘이 농장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다고 생각하기도 하지요. 슈무엘은 좋은 친구이지만 그도 어리니 역시 주위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리하여 이들의 우정은 본인들이 상상하지도 못한 방향으로 그들을 끌고 갑니다.

이 둘의 이야기가 진행되는 동안 브루노 가족들의 이야기가 주변에서 진행되어갑니다. 시어머니처럼 나치 독일이나 히틀러를 달갑지 않게 여겨온 브루노의 어머니는 우연히 눈을 뜨게 되지만 그녀는 무력하기만 합니다. 남편은 전쟁 중 임무수행이라면서 자신의 일에 대해 의문을 가지지 않습니다. 부모 간의 갈등은 집안에 긴장이 가득하게 하고 어린 브루노도 이를 느낄 수 있습니다. 브루노 부모의 모습을 통해 홀로코스트와 같은 엄청난 일이 어떻게 가능했는지에 대해 짐작할 수 있습니다. 저지른 사람들은 임무를 수행하는 것이 별로 사악하다고 생각하지도 않고 일에 충실했습니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은 괜히 나서서 불편하게 되고 싶어 하지 않으니 그냥 따라가면서 눈 감았다가 나중에 문득 이를 직면한 것이지요.

배우들은 좋은데 아역배우들의 좋은 연기를 베라 파미가와 데이빗 튤리스 등의 성인배우들이 잘 보조하고 있습니다. 흥미롭게도 영화 속의 캐릭터들은 독일 사람들이지만 배우들은 영국식 억양으로 영어 연기를 합니다. 하긴 [작전명 발키리]에서 톰 크루즈가 그냥 톰 크루즈처럼 말해도 별 이상이 없었으니 이 방식도 그리 문제될 것은 없다고 봅니다. 그리고 그 때 그 일이 그 때 그 사람들에게는 그냥 일상적으로 느껴졌을 뿐이라는 스산한 사실을 효과적으로 전달하는데 도움이 되겠지요.

[줄무늬 파자마를 입은 소년]을 보면서 여러 생각들이 들긴 했습니다. 특히 아우슈비츠에서는 애들은 살아나기 힘들다는 것을 알고 있는 저에겐 브루노와 슈무엘 간의 관계가 가능할지 대한 의문이 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원작 작가는 애초부터 우화를 쓸 의도였고 영화를 통해 전달되는 이야기에는 여러 결점들을 무시할 정도로 충분히 진솔함이 담겨 있습니다. 판타지에 가깝긴 하지만 그 경로를 거치는 동안 점차 다가오고 있던 참담한 현실이 마침내 입을 벌리고 맙니다. 이 영화가 국내개봉할지 아니면 DVD로 직행할지 모르지만 부디 겉만 보고 [인생은 아름다워] 비슷하게 광고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두 영화는 방식이 비슷한 가운데 여운을 남기지만, 둘은 각각 반대방향으로 갔습니다.


덧글

  • 진사야 2009/03/30 09:57 # 삭제 답글

    듀나게시판 타고 왔습니다 :D

    국내 개봉이냐 DVD 직행이냐... 제발 전자이길 바랍니다. 아직 안 늦었어요. 그럼요. (이 쪽으로 생각 주입 중인 1인;;) 이 작품만 보게 되면 작년 하반기 해외시장에 나온 최고 외화 기대작 두 편을 마스터하게 되는데 (다른 한 편은 슬럼독) 얘만 유독 어렵네요. 정말 하염없이 기다리다가 목 빠지겠습니다 ㅠ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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