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시 (Push, 2009) : 그 가방이 무슨 색이었더라? Movies


푸시 (Push, 2009) ☆☆


 [푸시]는 처음부터 신선도가 떨어져 있습니다. 저같이 보지 않은 사람들도 TV 시리즈 [히어로스]에 대해선 조금이나마 알고 있는데, 영화는 별별 초능력자들로 바글바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이러니 나름대로의 개성뿐만 아니라 더 많은 노력이 당연히 요구되지만 각본은 그냥 자동조종장치에 의존한 채 이리저리 갈 뿐이고 캐릭터들은 문제 해결을 위한 이야기상의 기어장치일 뿐입니다. 영화의 설명들에 별 납득이 가지 않고 이야기 흐름을 놓치기도 하니 저는 상당히 혼란스러워했고 영화의 요란한 기교들은 더욱 이를 부채질했습니다. 작년엔 [점퍼]가 있었는데 올해는 [푸쉬]가 나와서 저를 기분 나쁘게 하는군요.


정신없기 때문에 누가 나오거나 누가 촬영하고 누가 편집했는지 알아보기 어려운 메인 타이틀고 함께 캐시(다코타 패닝)의 내레이션이 초능력자들에 대한 설명을 합니다. 제2차 세계 대전 때 나치 독일이 초능력자들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어 실험을 해왔는데 냉전 시대 때에는 미국과 소련이 이 뒤를 이어받아 계속 실험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런 가운데 미국에서 디비전이라는 조직이 생겨서 초능력자들을 관리하고 미래 예지자인 왓처, 염동력자인 무버, 기억 조작자인 푸셔, 추격자인 스니퍼, 보호 능력자인 쉐도우, 변형 능력자인 쉬프터, 치유 능력자인 스티쳐, 음파 암살자인 블리더, 그리고 기억 삭제자인 와이퍼로 분류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디비전이 효율을 높이는데 왜 그렇게 혈안이 되었는지 몰라도 거기서는 사상자들 수에 별 신경도 안 쓰고 초능력을 극대화 하는 약물실험을 초능력자들에게 계속 해왔습니다. 그런데 이 실험에서 생존한 키라(카밀라 벨)가 탈출해서 어느새 홍콩으로 숨어 들어오게 되는데 홍콩엔 디비전 측 사람들뿐만 아니라 그녀를 찾으려는 초능력자들이 바글바글하지요. 그 중에는 영화의 주인공인 왓처인 어린 캐시와 비교적 서투른 무버인 닉(크리스 에반스)도 있습니다. 가이 리치의 [락큰롤라]의 줄거리 설명에 자신 있는 저마저도 일이 어떻게 돌아갈 지에 대해서 설명하기 힘든데, 영화의 맥거핀인 검은 가방(문제의 약물이 들어있습니다)을 두고 많은 난리들이 생긴다는 것만 말해두겠습니다.

잘하면 효과적으로 쓸 도구들은 많지만 영화는 이들을 대부분의 경우 형식적으로 사용합니다. 필요할 때마다 그에 맞는 초능력자들이 척척 등장하고 그런 다음 나가고 다시 필요하면 또 나오고 또 나갑니다. 영화는 이야기보다는 액션에 관심 있으니 당연히 가면 갈수록 무버에게 초점이 맞추어지고 닉은 처음엔 서투른 무버이지만 액션 장면들에 필요하니 상영 시간절반이 지나갈 쯤에는 금세 능력이 향상됩니다. 푸셔의 능력은 당연히 이야기 뒤집는 데 중요하지만 그 순간은 그리 놀랄 것이 아닙니다. 이야기가 혼란스러워서 방향을 못 잡기 쉬운 판에 그게 별 효과가 있지 않고 오히려 더 방향 감각만 잃어버립니다.

미래를 보는 왓쳐들의 이야기는 약간이나마 흥미롭지만 그림으로 조잡하게 그려도 예측이 전해지니 당연히 또 미래는 바뀝니다. 그들보다는 국내 주식 시세 현황판이 더 믿을 만하고 바뀔 수 있을 가능성이 내내 강조됩니다. 그럼에도 왜 각본은 다코타 패닝이 자신들이 죽을 것이라고 자주 말하게 하는지 이해가 안 갑니다. 왓쳐들 간의 대결은 처음에 흥미로워 보였지만 가면 갈수록 아리송해지고 영화는 여기에 별 설명을 제공해주지 않으니 정신없게 돌아갑니다. 즉흥적으로 계획을 꾸미자고 하지만 그 자체도 계획이니.... 나중에는 이 모든 것들이 예지된 것이라고 하면서 또 뒤로 내빼기 때문에 더 혼란스럽습니다. 예언을 알게 됨으로 인해 벌어지는 상황을 흥미롭게 다룬 필립 K. 딕의 단편 [마이너리티 리포트]가 이해 안 가시면 이 영화 볼 때 많이 어지러우실 것입니다.

배우들은 이런 혼란 속에서 그럭저럭 괜찮은 모습을 보이는데 다코타 패닝은 작년에 나와 혹평을 들은 [Hounddog]에서는 강간당했는데 이번 영화에선 어린 조디 포스터 스타일로 나오면서 술 마시게 됩니다.  그녀는 좋은 배우이니 몇 년 후엔 성인 배우로 당당히 인정받을 수 있고 운 좋으면 오스카도 받을 것입니다. 한데 이런 안 좋은 영화들에서 전환 단계를 시작하니 좀 유감이지요. 디비전 요원 카버를 맡은 지몬 한수는 어느 영화들과 부딪혀도 부서지지 않으니 제 관심을 끌어왔고 여기서도 마찬가지입니다(지난번엔 개인적으로 눈알이 빙글빙글 돌아가면서 와인 한 병을 금세 해치우게 한 [겟 썸]이란 영화에 나왔습니다).

영화의 가장 좋은 장점은 홍콩 시내 풍경일 것입니다. [다크 나이트]에서 잠깐 보여 졌던 마천루들의 모습과 북적한 거리 풍경들은 영화에서 생생하게 다가옵니다. 영화 만든 사람들은 홍콩을 21세기의 카사블랑카(실제 카사블랑카가 아니라 온갖 캐릭터들로 바글바글했던 영화 [카사블랑카]를 얘기하는 것입니다)로 전달하려고 했고 조성된 분위기는 훌륭합니다. 한데 흔들리는 카메라와 정신없는 편집 등으로 그것마저도 오래 즐기는 게 어렵습니다. 이런 요란한 기법은 [본 얼티메이텀]처럼 맥거핀을 향해 거침없이 달리는 영화에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방향을 종잡을 수 없어서 지루한 본 영화에겐 전혀 득이 되지 않습니다. 이리 저리 밀쳐지는 동안 저는 같이 본 사람에게 일이 어떻게 돌아갔냐고 묻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그게 어떤 가방이었더라?


덧글

  • 타인 2009/03/30 11:56 # 답글

    아마도 검은색인으로 생각됩니다.
    껌껌한 검은색.

    이런 것을 생각하고 있다니. 아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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