왓치맨 (Watchmen, 2009) : 버겁지만 충분히 진지하다 Movies


왓치맨 (Watchmen, 2009) ☆☆☆

영화 [왓치맨]의 제작 과정이나 개봉 과정에서 난관이 많았던 영화였습니다. 오래 전에는 테리 길리엄, 대런 아르노프스키, 폴 그린그래스와 같은 실력 있는 감독들이 여기에 달려들었다가 물러나는 동안 어느 새 때는 2000년대 후반이 되었지요. 결국엔 프랭크 밀러의 그래픽 노블 [300]을 영화한 전력이 있는 잭 스나이더가 감독을 맡게 되었습니다. 원작에 대한 충실함과 저 같이 원작을 보지 않은 사람들에도 잘 전달해야 하는 이 두 짐들을 동시에 짊어지고 나가는 것도 힘겨웠을 텐데, 만들고 나서는 소유권 문제로 분쟁이 일어나서 개봉 시기가 늦어졌습니다. 이런 동안 영화에 대한 기대는 커져갔고 마침내 영화가 지난 주 목요일 개봉되었는데 결과물은 그리 나쁘지 않습니다. 적어도 원작을 접하지 않은 저는 영화 속의 세상에 흥미로워했습니다.

[왓치맨]의 세상은 우리 세상과 다른 경로를 걸어온 1980년대입니다. 그 세계에서는 30-40년대 때쯤부터 보기엔 우스꽝스러운 가면과 의상 입은 왓치맨들이 등장해서 활약했고 그들은 제2차 세계 대전 등을 통해 20세기 미국 역사에 많이 관여해왔습니다. 한데 대부분은 초인적 능력을 가지지 않는 사람들이고 메인 타이틀 시퀀스에서 간간히 보여 지는 것처럼 결코 무적은 아닙니다. 살해당할 수도 있거나 아니면 그냥 평범한 삶으로 돌아갈 수도 있지요. 물론, 사고로 진짜 슈퍼 히어로 능력을 가진 닥터 맨해튼 같은 경우는 예외이지만 말입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사람들은 왓치맨들을 거부하기 시작했고 결국 미국 정부는 그들의 활동을 불법으로 규정합니다. 이리하여 영화 속 주인공들은 대부분 활동을 중단해 왔지만 로어셰크만은 뉴욕의 밤길거리에서 자경단원을 계속 해왔는데 다른 왓치맨들과 달리 정부에 소속되어 계속 활동해 오던 코미디언이 살해당하자 로어셰크는 이 사건을 개인적으로 조사합니다. 조사를 하면서 왓치맨들에 대한 음모가 있다고 생각한 그는 왓치맨 활동을 그만 둔 동료들과 접촉합니다. 자신의 천재적 능력으로 거대기업을 세워 부자가 된 오지맨디아스, 지하실에서 아울쉽을 만지작거리거나 선배와 얘기하면서 옛날을 그리워하는 나이트아울, 그리고 가면 갈수록 세상에 무관심해지는 닥터 맨해튼과 그의 조수가 된 실크 스펙터가 있지요.

영화는 원작에 비교적 충실하다고는 하지만, 원작을 모르는 제가 봐도 12부작 만화를 러닝타임 2시간 40분 정도 되는 영화 안에 집어넣는 것은 꽤나 힘든 일입니다. 사실, 원작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는 제가 봐도 영화는 여러 것들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지만 이야기를 빨리 진행시켜야 되기 때문에 그냥 넘어가곤 합니다. 그리고 그 긴 상영시간 동안 과거 회상 등으로 곁길로 빠지곤 하기 때문에 후반에서야 음모와 관련된 중심 이야기가 제대로 굴러가기 시작합니다. 원작에 충실한 것도 좋지만 이런 준비운동은 저 같은 보통 관객들에겐 좀 과다하게 느껴질 것 같습니다.

[왓치맨]은 그럼에도 충분히 재미있는 볼거리입니다. 영화가 캐릭터들의 드라마에 중점을 두기 때문에 액션 장면들은 생각보다 그리 많지 않지만, 다른 경로를 걸어온 세상의 모습들을 보는 것은 흥미롭습니다. 왓치맨들의 도움으로 미국은 베트남전에서 승리했고 소련과의 냉전에서 비교적 유리해진 가운데, 리처드 닉슨은 세 번째로 대통령에 당선되었습니다. 그 흥미로운 세상을 배경으로 잭 스나이더는 도입부를 시작으로 해서 여러 강렬한 순간들을 제공합니다. 예고편에서도 잠시 보여진 닥터 맨해튼이 그 황량한 화성에 가서 만든 구조물이 특히 인상적이었지요.

[왓치맨]의 캐릭터들이 황당하게 보이지만 영화를 만든 사람들은 그들을 정말 진지하게 다루었고 그들의 이야기는 긴 상영시간이 그리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흡인력이 있습니다. 잭 스나이더는 좋은 배우들을 캐스팅한 것도 도움이 되었는데, 그들 중 특히 재키 얼 헤일리가 두드러집니다. [리틀 칠드런]으로 놀라운 컴백 연기를 보여주어서 오스카 후보에도 올랐던 재키 얼 헤일리는 영화 대부분 그 요상한 마스크에 가려진 채 로어셰크를 연기하지만 그를 영화에서 가장 재미있는 캐릭터로 만듭니다. 닥터 맨해튼을 맡은 빌리 크러덥은 영화 대부분에서 특수효과를 통해 연기를 했는데, 무표정한 얼굴에 나체 조각상 신세인 캐릭터에게 그나마 남아있는 인간성을 불어넣기 때문에 작년에 나온 [지구가 멈추는 날]의 클라투보다 닥터 맨해튼은 덜 뻣뻣하게 보입니다. 이런 가운데 제프리 딘 모건은 거의 플래쉬백 장면들에서 나오지만 지저분한 캐릭터인 코미디언로 강한 인상을 남깁니다.

전체적으로 볼 때 [왓치맨]은 팬들과 보통 관객들 사이에서 어느 정도 균형을 잡는 데 성공했습니다. 비록 영화를 보는 중간에 인내심이 떨어지는 일이 생겼지만 저는 계속 흥미를 가지고 이야기가 돌아가는 것을 지켜봤고 거기에 만족스러워했습니다. 비록 [왓치맨]은 [다크 나이트]만큼이나 대단하지 않고 진중하지 않지만, 여러 단점들에도 불구 충분히 진지하고 받아들일 만합니다. 영화를 보고 나서 앨런 무어의 원작 그래픽 노블에 대한 호기심도 생기게 했으니 일단 한가지 임무는 해냈습니다.

P.S.

스코어는 잭 스나이더의 전작 [300]에서 협력했던 타일러 베이츠가 맡았는데 영화에서 스코어 비중이 더 넓어졌으면 좋았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몇몇 장면들은 기성곡들보다는 스코어가 대신 자리를 차지했으면 훨씬 더 효과적이었을 수도 있었거든요. 그나저나, 어느 장면에서 타일러 베이츠가 필립 글래스 스타일을 차용하는 것이 아닌가했는데 크레딧을 보니 필립 글래스의 작품을 차용했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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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왓치맨 (Watchmen, 2009) 2009/03/09 08:38 #

    * 앨런 무어의 원작 그래픽노블 [WATCHMEN]을 읽지 않은 상황에서 작성된 리뷰입니다. * 스포일러까지는 아니지만 영화판 결말에 대한 묘사와 자의적 해석이 있으니 주의 바랍니다."익스트림 비주얼 바이블" 우선 고백 하나부터 하고 이야기를 시작합시다. 잭 스나이더의 을 보고 극장을 빠져나오면서 이상하게 오로지 한 가지 생각만 들었습니다. 이 영화가 얼마나 멋들어진 녀석인지 어떻게 글로 표현을 해야 하지? 생각하니까 좀 막막하...... 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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